MLB 서울시리즈 한국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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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서울시리즈 한국팀 감독

대한생지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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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MLB 월드투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주관하는 투어로,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MLB 정규 시즌 경기를 치르는 투어입니다. 미국이 아닌 타국에서 진행한 경기의 처음은 1999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진행된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의 경기였습니다. '월드 투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은 것은 2023 시즌부터 시작이었고, 그 이름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여러 경기들을 계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2024 3월의 월드투어는 서울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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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일정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시리즈

1번째 경기 -  3월 20일 (수) 오후 7시 5분 (LA 다저스 VS SD 파드리스)

2번째 경기 -  3월 21일 (목) 오후 7시 5분 (SD 파드리스 VS LA 다저스)

월드 투어 스페셜 경기

1번째 경기 -  3월 17일 (일) 오후 12시 00분 (LA 다저스 VS 키움 히어로즈)

2번째 경기 -  3월 17일 (일) 오후 7시 00분 (팀 코리아 VS SD 파드리스)

3번째 경기 -  3월 18일 (월) 오후 12시 00분 (SD 파드리스 VS LG 트윈스)

4번째 경기 -  3월 18일 (월) 오후 7시 00분 (팀 코리아 VS LA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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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팀 감독


류중일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는 류중일 감독은 1963년 5월 21일 생으로 영덕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북고, 한양대 출신이며 1986년에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1999년까지 활동 하였으며, 은퇴 뒤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를 거쳐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2022년 부터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있습니다.

   류중일 감독의 야구 현역 인생


포항 중앙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5학년때 야구부가 해체되자 대구초등학교로 전학하였으나, 5학년이 끝나고 대구초등학교 야구부마저 해체되자 삼덕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갔습니다.

전국 무대에 이름을 알린 건 경북고등학교 시절부터입니다. 특히, 박노준, 김건우라는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야구 아이돌 스타를 보유한 선린상고와의 청룡기, 봉황대기 두 대회에 걸친 처절한 결승 명승부에서 경북고의 1번타자를 맡은 2학년 유격수로서 우승에 공헌하고, 다음 해까지 이어진 3차 경북고 전성시대를 이끌며,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했습니다.

특히 1982년 7월 17일, 잠실 야구장에서 개장 기념으로 열린 부산고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에이스 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경북고 졸업 후 한양대로 진학해 국가대표 유격수로 활약. 1985년도와 1986년도에 대학 올스타 유격수로 뽑혔습니다.

프로에 뛰어든 그는 198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입단 첫 해부터 오대석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으며 11타수 연속 안타라는 진기록을 작성했으며, 1987년과 1991년 두 차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재박을 제치고 유격수 부문 수상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1988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 과정에서 전년도에 김용국과 3루를 번갈아 맡았던 오대석이 유격수로 포지션을 옮겨야 했으나 결국 시즌 후 롯데로 이적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1987년 준우승, 1990년 준우승, 1993년 준우승. 게다가, 1993년 이후로 삼성은 1996년까지 3년 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지 못했으며 1997년 부터 은퇴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년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코치로 전향한 뒤로 2002년, 2005년, 2006년 에 3번에 걸쳐 자신의 소속 팀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은퇴할 때까지 삼성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며, 2000년 역대 현역 선수 중 처음으로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7번을 달던 팀 선배 김용국이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고 나서도 1번을 계속 달 정도로 1번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경북고등학교 시절에도 등번호가 1번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경북고 시절에는 16번을 달았었습니다.. 장타력이 약했던 선수라는 인식과 다르게 선동열에게 2번의 홈런을 친 전설의 4인 중 1명이며, 그 중 만루홈런도 있었습니다. 또한 위의 잠실 1호 홈런과 더불어 포스트시즌 4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등번호 1번을 달았으며(1987~1999) 현역 시절의 별명은 '천재 유격수', '그라운드의 살구꽃', '수비의 달인', '어벙이' 등이 있었습니다.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는 유명했던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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