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민영화에 따른 주식 시장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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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민영화에 따른 주식 시장 영향

대한생지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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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의 역사


우리금융지주가 1998년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 투입으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우리금융 잔여 지분을 모두 매입해 26년 만에 완전 민영화됩니다.

앞서 정부는 외환위기로 금융사가 줄도산하던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금융사의 부실을 정리하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등에 공적자금 12조8천억원을 투입하였고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한빛은행이 출범했습니다. 그 뒤 한빛은행은 2001년에 우리금융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습니다.

우리금융의 시초는 1899 1 30 고종 황제의 내탕금 대한제국의 황실 자본과 조선 상인이 주주로 참여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주식회사인 대한천일은행입니다. 대한천일은행은 경술국치 이후인 1911 일본인의 투자를 받으면서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0 한국상업은행으로 개칭했습니다.

또 다른 우리금융의 전신으로, 1932 12 16일에는 조선신탁주식회사라는 신탁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1946년에 신탁회사에서 시중은행으로 업무를 전환하면서 조선신탁주식회사는 조선신탁은행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는데, 4년이 지난 1950년에 한국신탁은행으로 또다시 변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54, 은행법 제정에 따라 한국상공은행 합병하면서 상호를 다시 한국흥업은행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렇게 전환 합병을 거치다가 1960년에 한일은행이 출범하게 됩니다.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유력 시중은행인 조상제한서의 일원으로 막강한 권위를 누려 왔으나, 1997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기업 여신의 비중이 높았던 은행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국제통화기금 지정 14 부실은행 들어가는 불명예를 안았고, 자구책을 마련하여 가까스로 대한민국 1 금융 구조조정에 따른 퇴출 처분을 피할 있었습니다. 퇴출 사태 직후인 1998 7월에 은행은 합병을 발표하여 1999 한빛은행이 출범하였습니다. 당시 협상 결과에 따라 존속 법인은 한국상업은행을, 비씨카드 회원사 자격은 한일은행을 계승했으며, 이와 함께 공적자금 3 2642원을 지원받아 국영화되었는데 당시 한빛은행은 국내 총자산 1위의 시중은행이었다고 합니다.

그 뒤, 2002 1월에 평화은행을 합병한 , 우리은행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우리은행 민영화에 따른 주식시장 영향


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우리금융 잔여지분 9357960(지분율 1.24%) 전량을 자사주 매입한다고 13 밝혔습니다.이번 자사주 매입은 지난해 10 5 우리금융과 예금보험공사 간에 체결한주식 양수도에 관한 기본 협약 따른 이행 절차인데,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우리금융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뤄졌습니다.

이번 거래는 13 종가 기준으로 다음날인 14 주식시장 종료 시간 대량매매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우리금융은 취득한 자사주를 즉시 전량 소각할 예정입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시장의 높아진 기대치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우리금융은 1998 공적자금 지원 이후, 7차례 블록세일과 2016 현재 운영 중인 과점주주 체제 도입을 위한 매각 26년에 걸친 공적자금 상환 절차를 완전히 마무리하고 100% 민영화를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금융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지난해 1000억원 대비 40% 확대된 규모로 진행되는데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우리금융 경영진의 강한 의지를 엿볼 있는 대목이라며앞으로 우리금융의 주주환원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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